저희 동네에는 음식을 제법 맛있게 하는
값 싼 식당이 있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가 운영하시구요,
가끔 시집 간 따님이 손녀들 둘과 놀러와
써빙을 돕는 그런 곳입니다.
참고로 청국장, 순두부, 김치, 된장 등 찌개류는 5천냥
갈비탕, 육개장, 제육, 돈까스등 육류는 6천냥이구요,
삼겹살이랑 부대찌개 닭도리탕도 하는등
전형적인 다 메뉴 박리다매 식당입니다.
원래 이런 식당치고 맛있기 어려운데
이 곳은 밑반찬이 잘 나와서 주 2~3회는 꼭 가게 되는
저의 맛집 같은 장소입니다.
설명이 쫌 길었죠?
본론입니다.
어제 저녁에 밥을 먹으러 식당 문을 여는데
앞 테이블에 등을 돌린 채 청국장 냄새를
풍기는 20대 초반의 선객이 있더라구요.
이게 맨발이어선지 메뉴 때문인지 모를 정도로
메뉴와 사람이 정확히 일치하는 기현상에
조용히 코를 반대로 하고 육개장을 시켜봅니다.
자고로 냄새는 매운 맛으로 잡는 법!!
이윽고 식사가 나오고 국물 한 수저 뜨려는데
갑자기 TV 소리가 엄청나게 커지는 겁니다.
음악 프로였다면 클럽을 방불케 할 수준의 데시벨였습니다.
하아.
목구멍으로 밀려나오는 한숨을 밥으로 꾸역꾸역 막고
코는 여전히 선객과 반대로 뒀지만
계속 들려오는 야구 중계 소리.
저 야구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선 그닥 보고 싶지가 않네요.
어쨌든 그냥 밥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숟가락을 열심히 놀리는데
이 섀리가 야구 채널이란 채널은 다 돌려가며
야구를 보는 겁니다.
야구방망이라도 있으면 귓방망이를 후려치고 싶더라구요.
혹시 술 먹나 하고 냄새를 참고 어깨 넘어로 슬쩍
테이블을 보니 술병은 없고 반찬 접시만 여덟 개가 보이네요.
이 식당은 반찬 더 주실 때 새 접시에 주십니다.
즉, 맘 좋은 노부부께서 5천원 짜리 청국장에
반찬을 세 번이나 더 주신 거죠.
눈치에 염치까지 없는 자슥이 이 상황에
스윽 한 마디 합니다.
" 사장님. 여기 밥 리필되요?"
리필이라니. 리필이라니.
추가도 아니고 리필이라니.
사장님 어이없어 하면서 조용히 메뉴판을 가르킵니다.
" 여기 공기밥이랑 사리는 천원 써 있죠?"
"그럼 됐어요" 아놔 이런 존나 답없이 쿨한 새 끼를 봤나.
암튼 이제 다 먹었으니 가겠지
좀 조용히 밥 먹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요,
이 새 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느린 속도로
남은 반찬을 먹으며 여전히 채널을 돌리는 겁니다.
오냐 나도 닉네임이 느림인데
니가 나갈 때는 어쩌는지 보자라는 맘으로
인터넷 기살 보면서 천천히 개겼습니다.
식당에 손님이 저랑 쿨남 둘 뿐여서 다행였다는.
야 이거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황급히 끝내겠습니다.
결국 쿨남이 먼저 일어섰는데요.
내가 이 새 끼 이럴 줄 알았습니다.
신용카드 등장!!
5천원 결재 후 유유히 1회용 커피까지 마시고 갑디다.
이윽고 그릇을 치우러 오신 사장님이
아직까지도 클럽 데시벨을 자랑하는 TV를
신경질나게 탁 끄시면서 낮게 한 마디 하십니다.
'하.....'
블랙이겠죠?
끝.
읽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
다음부턴 좀 짧게 써볼게요.
느림님도..식당사장님도 잘참으셨네요~
앞으로 밥먹을 땐 그런 놈 안계시기를~~ㅋㅋ
우리들 주변 곳 곳에 있더라고요 ㅎㅎ